더 환상적이고 아름답게
익히 알려진 신데렐라는 마법사 할머니, 12시가 되면 풀리는 마법, 호박마차, 유리 구두가 나오는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이다. 이는 그림형제의 신데렐라를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화하며 살린 이미지이며 원작 동화와는 거리가 있다. 그림형제동화전집에선 ‘비비디 바비디 부’ 주문을 거는 마법사도, 12시가 되면 풀리는 마법도 없다. 주문을 거는 주체는 신데렐라이며, 어머니의 무덤가의 개암나무와 새 한 마리가 마법을 대신해 아름다운 드레스와 신을 떨구어준다. 그리고 무도회 후 집으로 급하게 돌아온 신데렐라가 아름다운 옷을 벗어 무덤 위에 올려놓자 새가 물어가 증거를 인멸한다.
“착한 비둘기야, 산 비둘기들아, 하늘 아래 있는 모든 새들아, 이리 와서 날 좀 도와주렴. 좋은 건 저 단지 안에 넣고, 나쁜 건 너희들이 먹고.”
“온몸을 흔들어라 어린 나무야. 내 몸 위에 금과 은을 떨구어 다오.”
이러한 신데렐라는 비참한 심정일 때 생각지도 못하게 찾아온 마법사 할머니에게 아름다운 옷과 유리 구두를 받은, 착하게 살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이야기의 주인공과 거리가 멀다. 신데렐라가 일찍 집에 들어가야 한다는 금기가 없으며 그렇다면 왜 왕자에게 자신을 일찍 밝히지 않았는지의 개연성도 부족하다. 현대의 신데렐라는 순수하고 성실한 착한 소녀 신데렐라와 못된 계모와 언니들을 더 대비시킴으로 권선징악적인 교훈을 부각시키며 원작 동화에 ‘왜?’라는 의문으로 동화에 살을 더했다. 그리고 그 사이를 환상적인 마법과 낭만적인 사랑을 포함시켜 아이들이 몰입하기 쉽게 만들었다.
사라지거나, 줄어든 잔인함
그림형제의 신데렐라와 한국 구전 설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아이들이 읽기에 부적합할 정도로 잔인한 표현이 있다. 신데렐라의 언니들이 구두를 신기 위해 발을 자르고, 못된 언니들은 신데렐라를 도와준 새에게 눈을 쪼여 장님이 된다. 호랑이는 가난한 홀어머니의 팔과 다리를 하나씩 떼어 먹고, 젖먹이 아이를 오도독 오도독 먹는다. 이게 정말 아이들이 읽을 만한 동화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그림 형제의 ‘그림 동화(원제:《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이야기:Kinder-und Hausmärchen》)’는 독일에서 오랫동안 전해져 온 민간설화를 그림 형제가 편집한 민담집이었다. 그림 형제는 민화는 국민생활의 직접적인 표현이자 민족문화의 유산이라 생각하여, 이를 마음대로 개작하는 것을 반대하였다고 한다. 때문에 잔혹하고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 들어있는 민화의 특징이 동화에 드러났던 것이다.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도 비슷한 경우였다. 우리나라에서 설화집은 20세기 초반이 되어야 간행되었고, 전래동화라는 용어적 개념은 80년대 이후에 작가의 개작의도가 활발한 작품이 대거 등장하면서부터 정의되었다. 과거 우리나라 유교적 사회에서 어린이란 일방적인 양육과 훈육에 의해 수동적으로 주조되는 피조물인 어른의 종속물로 존재했을 뿐, 독립적인 인격과 권리는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있었다 하더라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즉, 익히 알려진 전래동화는 기본 설화가 가지고 있던 잔혹하고 노골적인 표현들을 삭제하거나 축소시키고, 권선징악적인 교훈을 말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만 남긴 이야기가 되었다. 따라서 호랑이가 어머니의 떡을 뺏고, 옷을 하나씩 뺏고, 팔 다리 하나씩 먹다 홀랑 다 잡아먹는 과정은 호랑이가 어머니에게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며 떡을 몇 개씩 받아가다 다 먹어도 배가 차지 않아 떡이 떨어진 어머니를 잡아먹는 과정으로 대체되었다. 윗목까지 들어와 젖먹이 아이를 잡아먹고 뭘 먹느냐 묻는 오누이에게 잡아먹은 아이의 손가락을 던져주자 오누이가 호랑이의 정체를 깨닫는 장면은 오누이가 몇 번의 질문으로 호랑이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바로 도망치도록 순화되었다. 원작의 잔인함은 성인이 봐도 거북할 정도로 불편했기에 그러한 순화 과정이 긍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변용은 기존 설화의 일부 특징을 잃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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