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연 작가의 ‘혼자를 기르는 법’은 혼자 사는 20대 여성 이시다의 이야기다. 언뜻 보면 실생활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 간단한 캐릭터 디자인, 독백 등의 형식 때문에 일상툰으로 보이고, 작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짰지만 ‘혼자를 기르는 법’은 일상툰이 아니다. 이시다는 작가와 동일인물이 아니고, 그 주변 인물들 또한 가상의 인물이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나와 내 주변을 말하려면 책임져야 할 부분들 때문에 오히려 하고 싶은 말들을 못하게 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어서, <혼기법>에 있어선 오히려 픽션인 편이 내 이야기를 하기에 유리한 포지션이라고 판단했다.’ 라고 말했다. 만화가 픽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건 시다가 아닌 이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이다. 주인공의 주변인물이라 생각했던 사람의 독백이 나오고, 시다는 알지 못할 사정이 나온다.
독백은 앞서 말했다시피 일상툰 형식의 툰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법이다.
김정연, <혼자를 기르는 법>. 서나래, <낢이 사는 이야기>. 자까 <대학일기>. 소영, <오늘도 핸드메이드!>. 김진, <아랫집 시누이>
흔히 무대 공연에서 볼 수 있는 독백과는 달리 일상툰의 독백은 문장이 짧고 간단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일기장의 문장들 같다.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하고, ‘나’로 표방되는 인물의 감정과 심리를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혼자를 기르는 법’은 누군가에 말하는 것 같은 ‘-ㅂ니다’체나 해요체의 독백체가 특징적이다. 제목이 ‘혼자를 기르는 법’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 추측된다.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수없이 많은 ‘~하는 법’의 게시글은 누군가에게 자신이 터득하고 배운 방법을 공유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글의 대부분은 ‘혼자를 기르는 법’처럼 해요, -ㅂ니다 체를 사용한다.
한 화는 5개 정도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는데, 에피소드는 각기 따로 노는 것 같으면서도 이어보면 같은 주제를 말하는 걸 알 수 있다. 한 화 뿐만 아니라 한 부에도, 첫 화부터 마지막 화까지의 전체 이야기에도 이 구성은 해당된다.
만화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1화~40화)엔 주인공 이시다와, 친구에게서 받아 키우게 된 햄스터 쥐윤발, 햄스터의 먹이를 사다가 친해지게 된 같은 동네의 해연과 함께하는 이야기이다. 해연은 처음 햄스터를 키우는 시다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며, 도움을 준다. 3화 시스템의 에피소드 중 하나, ‘햄스터를 기르는 법’엔 ‘기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읽고 있는 이 책에 답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는 제 운명을 위해 성명학을 읽었고, 어머니는 제 발달을 위해 심리학을 읽었으며, 선생은 제 인성을 위해 교육학을 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제가 과연 잘 자랐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말이죠... ’라는 말이 나오는 등 왜 제목이 혼자를 기르는 법인지, 혼자를 기른다면서 왜 햄스터와 물고기를 키우고 있는지 등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더라도 추측할 수 있게 만든다. 이시다는 자신과 햄스터 윤발을 동일시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2부(41화~60)화는 시다의 동생, 시리가 반지하방이 침수되며 시다의 집에 잠시 잠깐 살면서 시리의 이야기가 나온다. 가장 가까운 주변인이라 할 수 있는 동생이 보는 시다의 어렸을 때부터 현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시리와 해연은 시다와 같이 서울에 사는 20대 여성이며, 이들의 등장은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시다의 어머니를 포함시키면서 단순히 20대 여성이 아닌 이 시대 모든 여성에게 해당되는 일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3부(61화~86)화는 시다가 공황장애를 겪으면서 느끼는 불안함과 공포를 주로 다루고 있다. 결국 시다는 휴직을 했는데, 그러던 중에 3화부터 등장했던 햄스터 쥐윤발이 죽는다. 독자들은 처음부터 웹툰을 보면서 시다가 윤발이에게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를 알 수 있다. 작은 방 안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었고, 더 좋은 걸 주기 위해 고민했으며, 혹여 다치지 않을까 아프지 않을까 걱정하고 자신이 좋은 주인인지, ‘윤발이의 목적지가 나라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웹툰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무표정에 간단한 얼굴이었는데, 그래도 초반에는 보였던 우는 모습이나 웃는 모습이 뒤로 갈수록 눈에 띄게 줄어든다. 지치거나, 힘들어하거나, 불안해하는 표정을 몇 개의 선이 추가됨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윤발이를 화장하는 걸 볼 때조차 시다는 울지 않았는데 담담한 독백과 표정 없는 얼굴, 이어지는 스토리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을 더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요즘 시대에 자기개발은 필수적이다. 더 높은 곳을 위해, 더 나은 나를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책을 읽고, 운동하고, 노력한다. 하지만 아무리 나를 위해 정성을 쏟아도 주변 상황 때문에, 혹은 본인 때문에 세워둔 길이 엉망이 되기도 한다. 아예 그 길로 못 갈 정도로 망가질 때도 있다. 그럴 땐 아무리 인터넷에 '~하는 법'을 검색해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답을 내리기 어렵다. 그럼에도 다시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저마다의 혼자를 기르는 법으로 살아간다. <혼자를 기르는 법>은 시다의, 시리의, 해연의 '혼자를 기르는 법'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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