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0일의 썸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이다. 뉴저지주에서 자란 톰 한센이라는 소년은 진정한 사랑을 찾기 전까진 행복할 수 없다고 믿었다. 어릴 때부터 우울한 영국 음악에 빠졌고 영화 ‘졸업’을 잘못 이해했던 탓이다. 미시간주에서 자란 썸머 핀이란 소녀는 그와 달랐다. 부모님이 이혼한 후부터 2가지에 집착하게 됐다. 첫째는 검은 긴 머리였고 둘째는 머리카락을 자를 때마다 느끼는 무덤덤함이었다. 톰은 1월 8일 썸머를 만났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운명의 반쪽임을 느꼈다. 이 영화는 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는 다른 로맨스코미디 영화들과는 다른 지점들이 보인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 아닌 남자가 이별 후 여자와 함께했던, (혹은 떠올렸던) 시간을 되짚어 보는 이야기라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형식이기 때문에 영화는 썸머와 만났던 1일부터 500일까지를 차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 이별 후 다시 만난 날, 이별에 고통스러워하는 날, 행복했던 날, 처음 만났던 날, 첫 키스한 날, 싸웠던 날 등 어떻게 보면 뒤죽박죽으로 보이는 순으로 진행된다. 재밌는 건, 몇 개의 이어진 날을 제외하고 모든 날들이 시작되기 전 (nnn째 날) 이라는 타이틀이 붙고, 그 날의 상태에 따라 타이틀에 나오는 장면의 날씨가 변한다는 것이다. 썸머와 행복했던 날들은 푸릇푸릇하고 맑은 여름의 빛, 싸웠을 때는 조금 어둡고, 헤어진 후는 어둑한 잿빛이다. 썸머와 다시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은 날은 나무가 다른 색으로 물 들려 하기도 한다. 타이틀 장면의 일러스트는 톰의 꿈인 건축과도 가까이 닿아있다. 나무 뒤에 건축물들의 스케치가 보인다. 이유는 뒤죽박죽인 장면 배열, 타이틀 장면의 달라지는 색과 건축 일러스트는 영화가 톰의 시점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디자인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1일에서 500일까지 세는 것은 오로지 톰의 계산법이다. 썸머의 시점으로 본다면 아무리 길어도 488일의 톰이 되지 않을까. 일러스트의 배경도 링고스타나, 좋아하는 책으로 꾸며져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 제목인 500일의 ‘썸머’는 500일 동안의 썸머가 아니라 썸머를 사랑했던 톰이라는 해석을 할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적인 모습은 분할된 화면이 나란히 병치되어 같은 화면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두 프레임 사이의 간격을 띄워놓아 두 인물 사이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간격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효과는 하나의 화면 안에서 건물의 기둥 등으로 만든 긴 세로줄을 통해서도 보인다. 다른 공간뿐만 아닌 같은 공간을 나눠버리는, 함께 있을 수 없게 만드는 장면을 통해 썸머가 이별을 말할 것임을, 톰은 썸머를 이해하지 못하고 둘은 이어질 수 없음을 예상할 수 있다.
영화엔 여러 다른 콘텐츠들이 나온다. 더 스미스의 음악, 처음 썸머와 밤을 보내고 기쁨에 겨운 톰 주연의 짧은 뮤지컬, 톰이 어렸을 때 잘못 이해하고 썸머가 이별 통보하는 날에 봤던 영화 ‘졸업.’ 이들은 둘의 연애를 더욱 더 일상에서 볼 수 있게끔 만들어 관객과 가깝게 만들기도 한다. 이 중 톰과 썸머를 처음 연결시키는 건 노래이다. 그리고 둘이 오래 이야기를 하게 된 건 가라오케, 친구가 되자고 한 건 가라오케 이후이다. 두 주인공이 노래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만큼 영화에는 여러 ost가 나오는데 각 ost가 장면에 어울리는 가사와 함께 적절하게 섞이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톰은 썸머를 사랑했다. 썸머 역시 톰을 사랑했다.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건 서로 원하는 걸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톰은 정말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여성의 진지한 사랑을 받고 싶었고, 썸머는 자신을 알아봐주고 다가와주는 사람을 원했다. 둘이 이어질 수 없었던 건 둘 다 사랑에 대해 미숙했기 때문이다. 톰은 썸머와의 500일을 통해 운명적인 사랑을 위해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썸머는 톰과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었다. 초반 나레이션은 이 영화가 사랑 이야기는 아니라고 한다. 그 말에 동의한다. 영화는 사랑이야기가 아닌 성장 이야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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