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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스 로리, 『기억 전달자』: 사랑이 없는 유토피아 기억전달자는 왜 색깔이 사라졌는지 혼란스러워하는 조너스에게 “그럼으로써 우리는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었지. 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들은 포기해야 했단다.”라고 말한다. 『기억 전달자』의 사회는 항상 ‘늘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일종의 유토피아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사람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며 질서를 유지하게 한다. 이곳에선 거짓말도 다툼도 없다. 잘못을 했다면 ‘사과한다.’라고 말하고 상대는 ‘네 사과를 받아들인다.’라는 공식답변을 얘기한다. 누구에게나 어머니, 아버지, 이성 형제라는 균형 잡힌 기초 가족이 주어지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으며 원로들의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 만족스러운 직업이 주어진다. 퇴직 이후에도 편안한 노후생활이 보장되어있다. 이 사회의 긍정적인 측면을 목록화한다면 다음과 ..
손원평, 『아몬드』 서평: 사랑은 무엇인가, 끝을 알 수 없더라도 멈추지 않는 항해 ※스포일러 포함 나는 너를 사랑하겠노라. 그것이 죄가 될지 독이 될지 혹은 꿀이 될지 영원히 알 수 없더라도 나는 이 항해를 멈추지 않으리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한 윤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책을 통해 인식했다. 글자를 음미하며 반복해서 외우면 말의 뜻이 흐릿해지고, 그러다 어느 순간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며 ‘내가 헤아리기 힘든 사랑이니 영원이니 하는 것들이 오히려 가까이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에 윤재의 어머니는 여러 번 반복하면 의미가 하얗게 사라져 버린다는 말을 한다.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아아라아아앙. 사랑. 사랑사. 랑사. 랑사. 영원. 영원. 영원. 영.원. 여어엉. 워어어언. 자, 이제 의미가 사라졌다. 처음부터 백지였던 내 머릿속처럼. 윤..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서평: 앨리스에게, "너는 누구니?" 나는 어떻게 내가 나인 걸 알 수 있을까? 토끼굴에 빠져 알고 있는 상식과 질서가 어지럽게 뒤바뀐 이상한 나라로 들어간 앨리스는 반복해서 자신이 누구인질 고민한다. 이는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처음 인식한 수수께끼임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마주하게 되는 자아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앨리스가 어떻게 이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가는지 과정을 담고 있다. 토끼 굴에 떨어진 앨리스가 ‘날 마셔요’라는 커다란 글씨가 예쁘게 적힌 병에 있는 음료와 작은 건포도 케이크를 먹자 몸이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한다. 과하게 커진 몸 때문에 문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어 울던 앨리스의 앞에 다시 흰 토끼가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울음을 멈춘 앨리스는 중얼거린다. “오늘은 정말 모든 게 다 이상..
김보라 감독, <벌새> : 벌새는 왜 날갯짓을 하는가 ※ 스포일러 벌새는 1초에 80번의 날개 짓을 하며 공중에서 꿀을 빨아먹는 가장 새다. 벌새가 날갯짓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날 수 없기 때문에, 음식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의 주인공 은희는 이러한 벌새와 닮아있다. 중학교 2학년, 작은 키의 순하게 생긴 여학생 은희는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세상과 삶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애쓴다. 의 영문 제목은 , 벌새의 집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마주하는 첫 번째 사회는 자신의 가족이 있는 집이다. 자신의 의사를 말과 행동으로 표현할 수 없는 아이는 생존을 위해 울고, 엄마의 이름을 부르며 발버둥 친다. 관심과 애정을 받으려 애쓰는 건 철없는 행동이 아닌 정말 그야말로 벌새의 날개 짓과 같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
신데렐라,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원작 비교 분석 더 환상적이고 아름답게 익히 알려진 신데렐라는 마법사 할머니, 12시가 되면 풀리는 마법, 호박마차, 유리 구두가 나오는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이다. 이는 그림형제의 신데렐라를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화하며 살린 이미지이며 원작 동화와는 거리가 있다. 그림형제동화전집에선 ‘비비디 바비디 부’ 주문을 거는 마법사도, 12시가 되면 풀리는 마법도 없다. 주문을 거는 주체는 신데렐라이며, 어머니의 무덤가의 개암나무와 새 한 마리가 마법을 대신해 아름다운 드레스와 신을 떨구어준다. 그리고 무도회 후 집으로 급하게 돌아온 신데렐라가 아름다운 옷을 벗어 무덤 위에 올려놓자 새가 물어가 증거를 인멸한다. “착한 비둘기야, 산 비둘기들아, 하늘 아래 있는 모든 새들아, 이리 와서 날 좀 도와주렴. 좋은 건 저 단지 안..
김려령, 『완득이』서평_ ‘똥주’는 훌륭한 선생인가? ‘똥주한테 헌금 얼마나 받아먹으셨어요. 나도 나중에 돈 벌면 그만큼 낸다니까요. 그러니까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 『완득이』는 주인공 도완득이 담임선생님을 똥주라고 부르는 것도 모자라 신성한 교회에서 선생님을 죽여 달라 기도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완득이가 새롭게 겪은 모든 일의 시작은 똥주였다. 지난봄, 똥주를 만났다. 그리고 똥주가 죽이고 싶을 만큼 싫었다. 그때 즈음 나는 킥복싱을 시작했다. 킥복싱은 미치도록 좋았다. (중략)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 누구와 대화해본 적이 없어 혼자 떠들 수 있는 교회를 찾았다. 내 몸을 언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몰라, 내 몸을 잘 움직여줄 수 있는 체육관을 찾았다. 어쩐지 아버지와 어머니도 새로 찾은 기분이다. 똥주은 계속 자신을 숨기려 하는 완..
미야자기 하야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서평_ 치히로가 찾아준 것 치히로는 산더미처럼 몸을 불린 가오나시에게 묻는다. “집은 어디야? 너도 엄마 아빠가 있을 거잖아.” 가오나시가 어디에서 왔는지, 즉 정체성을 묻는 질문이다. 가오나시는 이에 “싫다”고만 말한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라 대답하지 못 한다기보단 정말 알지 못하기에 대답하지 못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가오나시는 외롭다. 유바바에게 이름을 뺏긴 종업원들 사이에서 가장 뚜렷한 자아를 가지고 있고, 돌아갈 곳이 분명한 치히로에게 끌리며, “센을 갖고 싶어”한다. 가오나시 뿐만이 아니라 온천탕의 등장인물들은 어리고 유약한 치히로의 뚜렷한 자아에 자신도 모르게 이끌리게 된다. 1. 꿈과 욕망 치히로가 린과 함께 일터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나오는 명패판은 일하는 종업원들의 이름이 붙어있다. 치히로(千尋)가..
김정연, 『혼자를 기르는 법』 김정연 작가의 ‘혼자를 기르는 법’은 혼자 사는 20대 여성 이시다의 이야기다. 언뜻 보면 실생활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 간단한 캐릭터 디자인, 독백 등의 형식 때문에 일상툰으로 보이고, 작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짰지만 ‘혼자를 기르는 법’은 일상툰이 아니다. 이시다는 작가와 동일인물이 아니고, 그 주변 인물들 또한 가상의 인물이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나와 내 주변을 말하려면 책임져야 할 부분들 때문에 오히려 하고 싶은 말들을 못하게 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어서, 에 있어선 오히려 픽션인 편이 내 이야기를 하기에 유리한 포지션이라고 판단했다.’ 라고 말했다. 만화가 픽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건 시다가 아닌 이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이다. 주인공의 주변인물이라 생각했던 사람의 독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