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국의 중서부에서 대학을 졸업한 닉 캐러웨이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초라한 변두리처럼 변한 중서부를 떠나 동부로 이주해 증권업을 배우기로 했다. 그는 뉴욕 교외에 있는 웨스트에그에 크고 화려한 집들 사이에 있는 작은 집으로 이사온다. 크고 화려한 옆집, 대저택에는 개츠비란 사람이 호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개츠비는 거의 매일 같이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하지만 정작 개츠비는 파티에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고, 파티에 놀러오는 사람도 개츠비에 대해 소문만 무성히 알고 있을 뿐이다. 닉은 그 파티에 초대받게 되고, 개츠비를 궁금해 한다. 개츠비는 닉의 육촌인 데이지를 젊었을 때부터 사랑했다. 둘의 사랑은 개츠비의 가난 때문에 이어지지 못했고, 데이지는 톰 부캐넌이라는 부유한 닉의 대학 동창과 결혼을 한다. 전쟁에서 돌아온 개츠비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돈을 벌고 데이지가 사는 집의 만 건너편에 크게 집을 지었다. 데이지가 찾아오기 바라는 마음에서 매번 크게 파티를 열었던 것이었다. 결국 개츠비와 친해진 닉의 주선으로 데이지와 재회하게 되고, 개츠비는 데이지의 태도를 보고 그녀의 사랑을 되찾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데이지의 남편, 톰이 불 같이 화내고, 데이지는 개츠비를 사랑한다 말하면서 톰을 놓지 못한다.
그러던 중, 개츠비와 데이지가 뉴욕에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내고 도망간다. 차에 치여 죽은 여자는 수리소 주인 윌슨의 아내이자 톰의 외도 상대인 머틀이었다. 톰은 뺑소니 범을 찾으려는 윌슨에게 사고를 낸 차의 주인이 개츠비라고 알린다. 윌슨은 자기네 집 수영장에 앉아있던 개츠비를 총으로 쏴 죽이고 자살한다. 개츠비의 장례식 날, 데이지는 남편 탐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장례식에는 개츠비에 파티에 왔던 그 많은 사람들 중 아무도 참석하지 않는다. 닉은 개츠비의 장례식을 주도한 후, 고향으로 돌아간다.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미국 사회, 경제 모습이 적나라하고도 세세하게 반영된 작품이다. 우선 이스트에그에 사는 개츠비와 웨스트에그에 사는 톰은 각각 미국의 신흥 갑부와 전통적인 부자를 나타내는 인물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아메리칸 드림과 마초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개츠비는 긍정적이고, 진취적이고, 낭만적인 이상향을 가졌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사랑에 대한 순수를 가진 그는 가난했지만 열심히 일해서 큰 부자가 되는 아메리카 드림의 대표적인 아이콘이다. 1920년대는 ‘재즈의 시대’, ‘광란의 20년대’, ‘무법의 10년’등으로 불린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1920년대 미국은 경제적인 면에서 정점에 올랐다. 이는 1929년 대공황 때까지 지속된다. 물질적인 풍족함으로 사회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었으며 ‘주식과 여자의 스커트는 올라가기만 한다’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1920년 1월 16일, 미국은 금주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는 불법 밀주 유통을 장악한 갱단들이 큰돈을 벌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개츠비 역시 이러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 개츠비의 거대한 저택에서 열리던 밀주와 재즈가 넘쳐나고, 모두가 흥청거리며 놀던 대규모 파티는 당시의 미국 사회를 압축한 듯 보인다.
기존 명문가 갑부인 톰은 타고난 부유함과 자신만만함으로 똘똘 뭉친 톰은 미국의 대표적인 남성성인 마초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남성적이고 거칠며 강한 것을 추구하며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한다. 여러 가지 운동에 재능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미식축구에서 뛰어난 선수로 활동했고, 교육으로 주입된 여성에 대한 매너는 알지만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진 못한다. 당당하고 뻔뻔하게 외도를 하지만 ‘감히’ 내 아내는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해 데이지의 외도를 알자 불같이 화내며 폭력까지 사용한다. 거기에 인종차별주의자인 데다가 자신의 생각을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다. 모든 것을 다 가졌기에 삶이 무료하고, 때문에 당장의 쾌락(바람)을 찾아 즐기는 인물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주요 여성 인물인 데이지, 조던, 머틀은 플래퍼적인 특징의 잔재를 보여주고 있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실제 플래퍼였던 뮤즈이자 아내인 젤다 피츠제럴드의 모습에서 플래퍼 이미지를 묘사하고 대중에게 확산시켰다.
플래퍼(Flapper)는 1920년대 재즈 시대의 자유분방한 젊은 여성들을 지칭한다. 1920년은 80여 년에 걸친 투쟁 끝에 드디어 여성 참정권이 허용된 해다. 더욱이 대량생산과 소비문화와 도시 중심의 생활형태가 가져온 변화 속에서 그녀들은 사회적인 제약을 넘어서 자기완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1차 대전이 일어나고 전쟁터로 떠난 남성들을 대신해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이뤄졌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들은 직장을 그만두려 하지 않았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 미혼의 젊은 여성들은 자전거와 차를 구입한 뒤 남성의 에스코트를 받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게 됐다. 스스로 돈을 벌기에 빨리 결혼해야 한다는 조급함을 느끼지 않았고, 그래서 여러 남자들과 가볍게 데이트를 하고 사귀며 향락 문화에 빠지기도 했다. 관습적인 행동규범을 벗어던진 플래퍼들은 미국인들이 지녀왔던 전통적인 ‘여성성’을 탈피하였고, 남성과 여성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다른 소설에서처럼 <위대한 개츠비>의 여성 인물들은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이전의 롱 스커트와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H라인의 헐렁한 실용적인 짧은 원피스를 입었으며 운전을 하고 직업을 가졌다. 이들은 19세기의 전통적인 여성이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고 대담하게 행동하고 있다. 외도를 저지르는 데이지나 머틀의 행동 역시 앞서 언급한 대로 여성의 성적 해방에 대한 당대 인식을 반영한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기존 관습에 대한 도전 정신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봉쇄되는 양상을 띠게 되고 보수화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여전히 여성의 운명은 누구와 결혼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되었고, 상류층의 여성일수록 직업을 가진 사람이 드물었다.
데이지는 첫사랑 개츠비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결혼하지 않고 대신 톰을 선택했고, 그녀의 선택에 걸맞게 물질적인 풍요 속에 소비를 향유한다. 데이지는 태어난 아이가 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렇게 말한다.
“딸이라서 기뻐. 저 아이는 바보였으면 좋겠어. 여자란 바보로 지내는 것이 가장 행복하니까. 예쁘고 귀여운 바보였으면 좋겠어.”
데이지는 비록 투표권을 부여받아 정치적인 평등을 부여받았다고 해도 정치적, 경제적 권력의 주변부에 위치하고 있던 상황 속에 갇혀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여성이 여전히 가부장적 질서에 의해 남편과 그의 부에 의해 좌우되는 삶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스스로 그 안에 안주하는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여성의 삶은 '바보'가 될 때만 행복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톰의 외도를 알아도 믿지도 않는 종교적 이유를 들며 이혼을 거부하고, 개츠비가 밀주로 인해 돈을 벌었다는 것을 알고 개츠비의 부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안 후 현실의 벽 앞에서 안정을 선택했다. 그녀의 젊은 날의 이상인 사랑을 영원히 포기할 수밖에 없다. 프로 골프 선수로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삶을 살고 도덕관념도 흐릿한 조던은 데이지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여성이다. 플래퍼의 복식만 하고 있는 데이지와는 구별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작품에서 그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데이지와 함께 소파에 '꼼짝않고' 누워있는 나른한 모습이었던 것은, 플래퍼의 생기가 권태와 무료함으로 변질된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개츠비와 닉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분신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특히 개츠비의 일생은 스콧과 아주 흡사하다. 그는 작가로 성공하지 못하고 비교적 가난했던 시절 데이지같이 아름다운 젤다와 파티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개츠비처럼 그의 환경 때문에 사랑을 평탄하게 시작하지 못하고, 후에 큰 성공을 거둔 후 결혼을 하게 되는데, 결혼 이후에도 둘의 부부생활은 순탄하게 흘러가지 못했다. 스콧은 지나친 음주, 젤다는 불륜과 불안정한 정신 상태로 피폐한 삶을 살았고, 사람들은 대공황과 젤다의 정신병원 입원으로 방탕하게 파티를 다녔을 때를 상상하지 못할 만큼 빠르게 가난해졌다. 결국 스콧은 마흔네 살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죽고, 젤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병원에서 죽게 된다.
<위대한 개츠비>가 사실적인 사회상을 담은 건 작가가 살아가면서 직접 보고 경험한 것들이 오롯이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1920년대는 잃어버린 시대라고도 불린다. 그 시대를 살았던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소설 속 화려한 인물들. 과거의 이야기지만 현대에도 생각해 봄 직 하다. 문화는 그 시절 한 때에만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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